초대졸 뜻 완벽 정리 펼쳐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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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취업시장에서는 대졸자라는 말보다는 고졸과 초대졸이라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과연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왜 이렇게 학력차별이 심해진걸까요? 지금부터 같이 알아보아요~

초대졸이란 무슨 뜻인가요?
대학 졸업자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전문학사 학위 이상 취득하면 초대졸이고 학사학위면 대졸이에요. 그래서 4년제 대학 중퇴자도 초대졸이라 합니다.

왜 사람들은 전문대나 지방대를 차별하나요?
학력 인플레 현상이죠. 옛날엔 고등학교만 나와도 먹고 살 걱정 없었는데 이제는 대학교 안 나오면 굶어죽어요. 그러니 너도나도 대학 가려고 하고 그러다보니 고학력 실업자가 넘쳐나고.. 악순환인거죠.

고졸이랑 초대졸 차이가 그렇게 큰가요?
기업마다 다르지만 대기업에선 좀 크죠. 특히 생산직은요. 하지만 사무직이라면 별 차이 없어요. 오히려 승진 같은 건 유리할 수도 있죠. 업무능력 좋으면 학벌 상관없이 인정받는 시대니까요.
우리나라 사회구조상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개인 스스로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 들어가는 게 좋겠죠. 모두 화이팅합시다!
오늘은 대학생들이 많이 궁금해하는 주제인 초대졸 뜻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해요. 여러분 혹시 초대졸이라는 단어 들어보셨나요? 저는 처음 들었을때 '초'라는 글자가 들어가서 뭔가 엄청 대단한 느낌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우리나라에서는 전문대 졸업자를 ‘초대졸’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말은 일본식 표현이랍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를 대신해서 대졸 또는 고졸 등과 같이 순화어를 권장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왜 굳이 대학교 명칭 앞에 ‘초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걸까요?

왜 하필이면 초대졸이란 용어를 쓰게 되었을까요?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전문학교를 설립했어요. 그리고 해방 이후 정부 수립 후 1946년 고등교육법을 제정하면서 종합대학교(4년제)와 전문대학(2~3년제) 체제를 갖추게 되었죠. 이때 4년제 종합대학교 중 일부 학과들을 2년제로 개편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엔 학력차별이 심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취업률이 높은 농업고등학교로의 진학을 선호했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서울대 축산업과는 인기가 없었다고 해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이 “학력 간 임금격차를 없애겠다”고 선언하며 실업계 고교 출신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우수한 인재들이 대거 몰려들어 경쟁률이 치솟았고, 자연스레 학교 이름보다는 실력 위주의 입시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고 해요. 즉, 1974년부터는 성적순으로 입학정원을 배정했다고 하니 얼마나 치열했을지 상상이 가죠? 이렇게 해서 생긴 게 바로 ‘서울대 농과대학 축산학과’입니다. 다른 단과대학처럼 학부 단위로 모집하면 훨씬 많은 인원을 선발할 수 있었지만, 한 학년 정원이 40명밖에 되지 않는 소수 정예 과정이었기 때문에 1등부터 40등까지만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해요. 결국 1975년 첫 신입생 전원이 모두 인문계 고등학교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럼 이제 정식명칭은 어떻게 되나요?
원래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였지만, 1979년 현재의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또한 1980년 9월 제5공화국 출범 직후 전두환 정권은 1981년 7월 21일 발표한 「학제개편방안」에서 기존의 사범대학·종합대학체제를 폐지하고 단일학부 및 전공별 학제를 도입한다고 밝혔어요. 그러면서 같은 해 8월 31일 개정된 현행 6차 교육과정 고시문에서도 단위기관별로 설치되어 있던 각급 학교의 편제를 통합하도록 규정했죠. 따라서 1982년 10월 22일 시행된 새 교육과정에서부터 전국의 모든 대학은 5개 계열 내에서 자유롭게 학사조직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예체능계열은 예외였는데, 체육대학만이 독립되었고 음악대학과 미술대학은 각각 예술대학 안에 편성되었어요. 그러나 1983년 12월 28일 공포된 <각종학교설치령> 부칙 제6조에 의해 1984년 11월 15일 이전에 개교한 각종학교는 종전의 예에 의한다는 단서조항이 신설되면서 1985년 신학기부터 초등학교 교사 양성기관이었던 교대와 사범대학이 중등교사 양성기관으로 전환되었죠. 한편 1987년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1988년 실시된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어요. 1990년 민정당은 그해 가을 정기국회에서 교원양성제도 개선안을 제출하였는데, 1991년 최종 확정된 개정안 내용 가운데 하나로 특수목적대학 제도가 제시되었답니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1996년부터 2008년까지 총 14년간 운영될 새로운 국가교육개혁안 시안을 심의 의결하였고, 1997년 김대중 정부 시기에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어요.
1998년 국민의 정부시기 국정과제위원회였던 교육개혁위원회는 1999년 상반기까지 마련한 개혁시안을 토대로 2000년 하반기에 『새천년을 향한 미래지향적 교육개혁 방안』을 발표하였습니다. 2001년 노무현 정부시절 인수위원회는 2003년 취임 100일을 맞아 향후 5년간 실천할 주요 과제를 담은 로드맵을 발표하였으며, 2004년 참여정부 역시 2005년 신년사를 통해 2020년까지의 중장기 비전을 밝혔습니다. 2007년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업무보고에서 2010년까지 달성할 정책목표를 설정했으며, 2011년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연두업무보고에서 2014년까지 성과지표를 도출하겠다고 보고하였답니다. 이렇듯 다양한 정부부처마다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보니 일관성 없이 여러 가지 안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2015년 문재인 정부는 2017년 대선공약집에서 2018년까지 임기 내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 사업으로 △고교 무상교육 완성 △기초연금 인상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최저임금 1만원 실현 △국공립 보육시설 이용아동 40% 확대 △반값등록금 완성 △국가장학금 지원 대폭 확대 △치매관리체계 구축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보육서비스 질 제고 △주거비 부담 경감 △청년 일자리 창출 △저출산 고령사회 대비 사회안전망 확충 △맞춤형 기초생활보장제도 정착 △농어촌 삶의 질 향상 △장애인 연금 급여 인상 △어르신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중심 경제 선도 △중소기업 성장 희망사다리 구축 △취약계층 맞춤형 고용ᆞ복지 서비스 제공 △실질적 성평등 사회 구현 △공정경쟁 환경 조성 △재벌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부동산 시장 안정화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노동시간 단축 통한 일자리 나누기 △미세먼지 걱정 없는 쾌적한 대기환경 조성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세월호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 △임을 위한 행진곡 공식 기념곡 지정 △제주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 규제기능 분리 △언론자유 수호 △남북관계 발전 도모 △지방분권 촉진 △검찰 권력 견제장치 마련 △공직비리 근절 △갑질 횡포 근절 △전두환 추징금 환수 △평창 동계올림픽